문명 충돌과 기독교 2
이삭의 자손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마엘의 자손 아랍 민족이 사는 팔레스타인 땅은 하느님께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땅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도달했을 때 이미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창12:6). 가나안의 초기 원주민들 가운데는 르바 족속(Rephaim), 엠 족속(Emim), 호리 족속(Horim), 수스 족속(Zuzim), 아낙 족속(Anakim), 겐 족속(Kenites), 그니스 족속(Kenizzites), 갓몬 족속(Kadmonites)이 있다.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 가운데는 헷 족속(Hittites), 가나안 족속(Canaanites), 블레셋 족속(Philistines), 히위 족속(Hivites), 여부스 족속(Jebusites), 브리스 족속(Perizzites), 기르가스 족속(Girgashites) 등이 있다.49)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맨 처음 팔레스타인 지역은 농경 정착민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와 유목민이 살고 있었고, 그리고 이방 민족이 들어와 정착해서 사는 것도 그렇게 크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정해진 이웃이 없이 살아가는 당시 아랍 유목민들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정착했지만,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있은 지 30년이 지났을 때, 유대인 무장반란의 거점인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의 군사력이 총 동원된 오랜 포위 작전 끝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 내렸으며 이 때부터 유대인은 국토 없는 민족으로 전세계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신세가 되었다.
1880년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 아랍 두 민족은 평화롭게 어울려 살았다. 당시 팔레스타인 총인구 50만 가운데 유대인은 2만 5천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무장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밀려들었다. 19세기말부터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을 내세워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50)에게 위협이 느껴지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지역은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의 편이 되어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조상이 살았던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도록 여건이 조성되었고, 그것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현실화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나치시대에 600만 명의 유대인학살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극도의 어려운 시기였다. 그들에게 하나의 희망은 다시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윽고
제 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은 아랍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모순된 이중 외교를 하고 있었다. 1915년 10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은 <맥마흔 서한>을 발표했다. 아 랍이 전쟁에 협력하면 전후 팔레스타인52)을 아랍인에게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 무관인 맥마흔은 요르단과 사우디 북부지역인 하자즈의 통치자, 샤리프 후세인과의 비밀 서한에서 아랍인들에게 오스만제국에 대한 봉기를 요구하고 아랍 국가의 독립을 약속한 것이다. 한편 1917년 영국 외상 발포어는 미국 내 유대인의 협력을 얻어 미국을 참전시키려는 목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이른바 ‘발포어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터키는 독일 편에 가담하여 영국과 싸우고 있었다. 이에 ‘메카의 수호자’ 후세인은 영국인 로렌스의 도움을 받아 터키 군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아랍 국가의 독립보다는 유대인의 독립을 선호하는 ‘발포어 선언’을 이행하고자 했다. 이에 유대인은 우간다, 남미, 팔레스타인 등 여러 후보지 중에서 자신들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안에 세울 것을 결정한다. 유대인들은 영국의 비호 아래 이민을 계속, 1936년에는 총인구의 28%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를 하면서 팔레스타인을 둘로 분할,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독립국가를 세우는 중재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이 유대 민족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 한편 1945년 3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은 아랍 연맹을 결성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키로 결정했다. 독립의 꿈이 무산된 아랍인들은 시오니스트와 영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테러, 파업, 시위가 잇달았다. 이에 영국은 문제를 국제연합으로 넘기고 철수를 선언해버렸다. 양측은 영국군이 철수하기 전에 좀더 넓은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마침내 유엔은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남과 동시에 이스라엘이 독립되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1차 중동전쟁을 감행했다.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54) 100여 만에 달하는 아랍인들은 난민이 되었다. 그후 아랍 세계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1956년, 1967년, 1973년 세 차례나 더 전쟁을 했지만, 열강의 지원과 생존권의 문제로 이스라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특히 1967년 제 3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 군이 기습 선제 공격으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연합군을 단 6일 동안에 제압했고,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통하여 팔레스타인 전 지역과 시리아 골란고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차지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영토는 건국 당시보다 8배나 확대되었다.
팔레스타인 점령지 내의 인구 비율은 유대인 82%, 팔레스타인 아랍인 18%로 추산된다. 유대인들은 점령지에서 인구수와 땅의 소유에 의해 우의를 확보하기 위해 소련, 이디오피아 등지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이주시키고 있고, 이들을 위한 유대인 정착 촌을 건설하고 있다. 1967년 제 3차 중동 전쟁 이후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이렇게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은 145개에 이른다. 한편 현재 팔레스타인 인구는 650만 명으로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인구는 250만 명에 불과하고 400만 명은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이국 땅에서 난민으로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적 위를 차지하기 위해 건축법, 수돗물 사용의 규제55) 등으로 아랍인들의 귀항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경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휴전선을 정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은 국경이 정확하지 않은 나라로 간주된다. 그 뿐만 아니라 수도가 두 개인 나라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텔아비브와 자국이 수도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이 있다.56) 1948년 이스라엘이 아랍인들이 살던 지역을 강점한 후 영토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적인 전쟁을 거듭해오면서 예루살렘은 알-이크사 사원을 중심으로 하여 아랍 지구인 동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지구인 서 예루살렘으로 구분 되어 있다. 예루살렘 구 시가지는 4 구역(4 Quarters)로 나누어져 있는데, 크리스챤(Christian)은 성 분묘교회를 지키고, 무슬림(Muslim)은 지구와 바위의 돔(Qubbat Al-Sacra)과 그 경내(Haram Al-Sharif)를 지키고 있으며, 유대인(Jewish) 통곡의 벽을 지키고 있고, 그리고 서쪽 하단의 나머지 지역은 아르메니아(Armenian) 기독교도가 지키고 있다.57)이와 같이 예루살렘은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모두에게 양보할 수 없는 성지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성지를 둘러싼 분쟁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랍 팔레스타인들에게 이스라엘은 수많은 동족을 살던 땅에서 몰아낸 침략자요,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여겨졌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데는 미국 내 유대인들이 보낸 성금과 미국 정부의 차관이 크게 역할을 했다. 더욱이 미국은 이스라엘을 아랍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교두보로 삼아 적극 지원했다. 때문에 이후 아랍의 반 이스라엘 투쟁은 자연스럽게 반미투쟁으로 전환되었다.58) 해결의 실마리는 막연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의 기독교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랍을 비롯한 이슬람 세력으로 더욱 격화되어가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바로 서방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중동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1948년 영국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하고 UN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을 때 주변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이 서구기독교국가들에 의해서 진행 되는 것을 보고 문명 대 문명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대립이 첨예화되고 있는 이슬람의 원리주의자들과 영국과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간의 대립은 점점 첨예화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강경 무장단체인 하마스59)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과 자치 안을 거부하며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아랍 입장에서 보면 마치 유목민들이 거주할 자리를 옮겨 다니다가 정착하듯이 이 지역에 들어와 정착한 다음, 그곳이 이미 선조 때부터 받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격이었다. AD135년 유대인들은 로마에 저항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었다. 395년부터 팔레스타인은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614년에는 페르샤의 지배를 받다가, 그 후 7세기에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1400여 년 간 여러 민족과 혼합을 이루어 나아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떠난 이후 이슬람교 사원을 짓고 2천년동안 살아오고 있었던 곳이었다.
이 점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문명과 서구 기독교 문명이 대결로 첨예화되고 있는 곳이다. 만약 문명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면 문명 충돌의 기준은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 십자군 전쟁과 서구의 식민지 지배 경험 등 서방 기독교 국가들에 의해서 받은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서구기독교인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60)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 ‘국민과 언론을 위한 Pew 조사센터’의 발표 (
4-3. 아랍 세계와 이슬람교 이해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는 동서로 갈라져 패권과 영광을 다투다가 마침내 구라파와 슬라브 민족 사이에 소위 기독교 문명권이라는 것을 남기고 지상에서 사라졌다. 이와 같이 유대교의 전통을 뛰어 넘은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AD 325)가 되면서부터 더욱 범세계적으로 뻗어 나아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기독교가 더욱 권력과 부를 소유하게 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을 때, 7세기경 마호메트(Muhammad)가 나타나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종교, 즉 이슬람교를 세웠다.
코란을 경전으로 하는 이슬람 문명은 이슬람교가 완성의 종교라고 내세운다 "오늘 나는 너희들을 위해 너희들의 종교를 완성하였고, 또한 너희들에 대한 나의 은혜를 다 하였으며 이슬람을 너희들의 종교로 선택하였느니라"(코란 5장 3절). 이슬람은 하느님은 한 분뿐이라는 유일신의 신앙이며, 우리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온 인류에게 전파한 복음임을 믿는 종교다. 마호메트는 알라가 보낸 최후의 자비의 예언자로 여겨졌다. "나는 온 누리를 위해 그대를(마호메트) 오직 자비로서 보냈을 뿐이니라."(코란 11장 107절) 무슬림들이 코란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이 구약성서 ‘토라’와 신약성서 ‘인질’(Injeel)이 변질되고 삭제되고, 첨가된 부분이 있어 원본의 상태로 환원시키기 위해 아랍어로 코란을 적어보내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호메트의 업적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단행본으로 완성하였다는 것과 구약과 신약이 보존하지 못했던 원서를 원본 그대로 보존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마호메트와 이슬람교에서는 신약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독교의 복음서는 헬라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와 함께 매우 심히 왜곡되어 전해져 왔기 때문에 원본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이 보는 복음서에 나타난 오류의 총 합계는 수백을 헤아린다. 기독교도들이 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은 영감을 통하여 예수에게 계시된 것도 아니었고 또한 예수가 만들어 내지도 않았으며 그 당시에 편찬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의 승천이 지나고 난 오랜 후에 몇몇 사람들이 그의 행적과 그가 행한 기적 그리고 그가 유태인들에게 주었던 훈계에 관하여 이야기를 수집하여 만든 것이다.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예수를 직접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그 이름은 마가와 누가이다. 또한 누가의 스승이었으며 영적 지도자였던 사도 바울 역시 예수 측근에 있었던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62)
이슬람교를 따르는 무슬림63)들은 오직 "알라"의 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모하메트와 그의 10명의 제자들은 아브라함을 이슬람 신앙의 창시자로 믿었다. 코란은 이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를 것을 명하며,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닌 성실한 이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유일신 ‘알라’만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 알라의 종교는 아브라함-이스마엘-이삭-야곱-모세-예수에게 계시된 종교로서 오직 그 한 분 ‘알라’만을 ‘믿고 복종하는’ ‘이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란에는, "마호메트"가 설파한 종교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의 종교와 같으므로 유일하게 하느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한 하나의 종교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아브라함을 중요시한다. "자기를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면서 남을 이롭게 하여, 정직한 자 아브라함의 믿음을 쫓는 사람보다 더 나은 자 누구인가? 바로 이 때문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벗으로 삼았느니라"(코란 4: 125). "아브라함은 유대교도도 기독교도도 아니었나니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던 바 곧 이슬람이었느니라. 그러므로 그는 또한 여러 신을 섬기는 자도 아니었도다."(코란 31:67)64)
위에 인용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예수를 포함한 그의 자손들이 전파하고 실천해 왔던 종교란 다름 아닌 "하느님에 대한 복종", 즉 이슬람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호메트를 마지막이 최대의 예언자로 믿고 있는 종교가 이슬람교가 된 것이다. 이슬람교는 노아-아브라함-모세-예수의 전통을 고수한다. "알라께서는 너 마호메트에게 명백히 밝혔느니 너에게 계시된 종교는 바로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에게 계시 내려진 바로 그 종교이다. 이제 그 종교를 굳건히 할지니 그 안에서 분열하지 말지어다. 여러 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너의 호소는 힘겨웁나니 알라께서는 마음에 드시는 자들을 간택하시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들을 인도하시느니라."(코란 42: 13) 코란은 오직 우리가 복종해야 하는 신은 ‘알라’뿐이라고 한다. 그 나머지는 우상이다. ‘알라’에게 복종하는 삶, ‘이슬람’만이 인간의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교에는 신앙의 기본이 되는 여섯 가지 가르침과 신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행실이 있다. 여섯 가지 가르침은, 첫째, 알라는 절대 신 ‘알라’65)이다. 둘째, 천사는 알라를 모시는 영적인 존재이다. 셋째, 코란은 신의 뜻을 전하는 책이다. 넷째, 예언자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자다. 다섯째, 사후 세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어 착한 행동을 하면 천국에 간다. 여섯째, 모든 세상일은 알라의 뜻이다. 다섯 가지 행실은, 첫째, ‘알라는 유일신,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도’라는 말을 외우고 항상 신앙을 확인한다. 둘째, 매일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예배를 드린다. 셋째, 가난한 사람과 이슬람 교단에 기쁜 마음으로 재산의 일부를 내놓는다. 넷째, 이슬람력 9월에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다섯째, 일생에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하여 신앙심을 북돋운다.
무슬림들은 그들의 하느님인 ‘알라’가 인간에게 3가지 선물, 즉 땅과 책과 스승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땅으로 보내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땅을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다섯 권의 책, 즉 아담에게 보낸 복음서(Huda), 아브라함에게 보낸 수흐프(Suhuf), 모세에게 보낸 토라(Taurah), 다윗에게 보낸 시편(Zaboor), 예수에게 보낸 인질(Injeel), 마지막으로 마호메트에게 보낸 코란(Koran)을 말한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25명의 스승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무명의 스승들이 12만 4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 중에서 아브라함은 가장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하나로서 하느님의 유일신 사상을 가장 잘 지키는 모범자로, 하느님의 친구(Khal-eel Allah), ‘스승 중의 스승’(Sheikh al Anbiya)라는 칭호로 불리었다. 또 하나의 스승으로는 모세를 든다. 구약성경 묘사 그대로 모세는 하느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는 의미에서 무타칼림(Mutalkhalim)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무슬림들은 아브라함, 이스마엘, 마호메트를 통한 계시가 유일신의 전통이라고 믿고 있다. 이와 같이 6세기경 마호메트는 알라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구약과 신약을 수정과 보완을 하여 교합한 "코란"을 경전으로 삼고 이슬람교를 창설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유일신 "알라"에 대한 절대적 유일신 신앙과 엄격한 율법과 신정일치, 그리고 독특한 예배의식과 생활양식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적자인 이삭에게 내려주었다고 믿고 있는 반면에 이슬람의 코란에 의하면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장자인 이스마엘에게 주었다는 입장이다. 코란 37장 102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너를 제단에 올리라는 명령을 내가 꿈에서 보았노라"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기꺼이 순종 하려하자 하느님은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저지하고 대신 숫양을 죽이게 함으로써 아들은 죽음을 면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또 한 명의 아들 이삭을 주실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코란 37장 102절에서는 "하느님은 그에게 의로운 자 중에 있을 예언자 이삭의 소식을 주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이스마엘이 제물로 들여질 아들이었으며 이 시험은 메카, 또는 그 근방에서 행해졌다고 믿는다.
코란에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메카의 최대 사원인 카으바 신전을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호메트 전승에 의하면 그곳에서 물이 나오자 아담과 하와가 땅에 내려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최초의 신전을 세우고 주춧돌을 놓았다고 한다. 이 신전은 노아시대 대 홍수로 인해 크게 손실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아브라함이 유일신 신앙의 모범자로 선택받아 신전 재건축의 지시를 받아 그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신전을 증축했다고 한다(코란12:127). 카바 신전이 다시 완성되자 아브라함은 이 신전 주변을 시계반대 방향으로 일곱 차례를 돌았는데, 그것이 전 세계 무슬림들이 메카 성지순례(코란
코란은 물도 없는 돌산으로 둘러싸인 황폐한 계곡에 있었고, 폭염과 갈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린 이스마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갈이 사파와 마르와 라고 부르는 두 계곡 사이를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는데(코란2:158) 결국 하갈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바로 발 밑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잠잠"(물아 멈추어라)이라고 불리 우는 이 샘물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으며, 순례객들은 이 샘물을 가지고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며 하람 사원 안에 있는 두 언덕 사이의 대리석 회랑 사이를 일곱 번 뛰고 걸으면서 무슬림들은 하갈의 절박한 순간을 기념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카바 신전을 예언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처음 세운 "가장 오래된 신의 집"이라고 믿고 있다.66) 이 신전은 이슬람 이전부터 메카에 있었던 것으로 검은 장막으로 덮여 높이 15cm가량의 회색 돌로 쌓은 네모난 건축물로 동쪽 모서리에 "신의 보물"이라고 하는 검은 돌이 박혀 있으며 이곳을 찾는 순례자는 이 성스러운 검은 돌에 입을 맞춘다. 연례 행사인 메카로의 순례여행 ‘하지’는 전 세계에서 온 이슬람들이 카바를 에워싸고 돌면서 이슬람 신앙의 핵심이 되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다진다. 아라비안 인들은 360여 가지의 신을 섬기고 있었다. 630년 메카에 입성한 마호메트67)는 최고의 신 "알라 탈라"이외의 모든 우상을 파괴해 버렸다. 카바 신전은 이슬람교의 종교적 중심이며,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이곳을 향해 예배를 올린다.
무슬림들은 오늘의 아랍문명을 이루어 나아갔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고 우선적으로 지켜야할 것은 국가와 민족이 아니라 종교다. 그들은 누구나 아랍어로 예배를 드리며 코란에 의하면 건강과 경제 사정이 허락하는 한 무슬림 성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메카와 메디나 성지 순례를 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세계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아브라함과 하갈, 이스마엘 그리고 모하메트의 발자취를 물으며 유일신 알라를 경배한다.68) 캐런 암스트롱은 자신의 책「신의 역사」에서 "모든 숭배의 초점이 되는 유일신은 개인은 물론 사회도 통합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마호메트는 일신교가 당시의 아랍 세계를 분열시킨 폭력적인 파벌주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적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는 아시아 남서부 페르시아 산과 인도양 홍해에 둘러싸인 반도로, 대부분 거칠고 메마른 산지와 사막이다. 옛날에는 베두인(유목민) 중심의 사회였으나, 지금은 석유산업의 발달로 사회구조가 바뀌고 있다. 이슬람교의 발전과 함께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요한 지역이다. 이들은 때때로 약탈도 서슴지 않는 거친 민족으로 유럽인들은 이들 아라비아 민족을 사라센이라 불렀으니 곧 "사막의 아들"이란 뜻이다. 7세기에 마호메트에 의하여 전파된 이슬람교는 아라비아에 종교적 통일을 가져왔다. 그에 따라 큰 힘을 갖게 된 이슬람 세력은 맹렬한 기세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치는 지역을 정복하고 대제국(이슬람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100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3대륙을 제패한 경험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69)
1923년 터키 공화국, 1925년의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탈종교화를 부르짖고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 개혁의 물결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튀니지, 파키스탄 등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여기에 대해 이슬람 문명이 서양의 타락된 문명에 오염되는 것에 분노한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화되었다.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후 원리주의를 더욱 강화하면서 이라크, 리비아, 아프카니스탄(탈레반 정부)등에 퍼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서구 문명 내지는 서구 기독교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원리주의자들은 서구문명 뿐만 아니라, 이미 서구화된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아, 파키스탄 등의 타도를 노리고 있어 이슬람 세계는 더욱 이분화 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슬람 세계는 다시 이슬람 종교로 다시 규합된다. 이슬람의 인구는 13억이다. UN에 가입한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만도 55개국에 달한다.
5. 평화와 새 문명 창조를 위하여
5-1. 평화의 길을 찾아서
우리는 ‘9.11 테러’(terror)의 참상을 지켜보았다. 충격과 경악이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이번에는 미국을 위시한 연합전선을 형성한 국가들이 ‘테러와의 전쟁’(war against terror)이란 슬로건 아래 전쟁을 감행하는 것을 보았다. 또다시 무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가족과 집을 잃어 거리에서 그리고 국경선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이처럼 ‘테러’ 그리고 ‘러와의 전쟁’의 수행은 인류를 비극으로 몰아 가고 있다. 평화가 깨진 것이다.
어떻게 자살 테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9,11테러를 치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는 9.11테러와 같은 대규모의 테러를 방지할 수 있을까? "테러와의 전쟁"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은 행동이 옳을까? 부시 대통령은 전쟁이 몇 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우리는 최근 미국에서의 자살 테러와 그에 따른 보복 공격이 이유를 불문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작태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종교를 빙자하여 행해지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9.11 테러와 그 이후의 테러와의 전쟁은 반인륜적이요, 반문화적이다.
미국이 약소국가였다면 9.11 테러 사건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몰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테러는 지구 공동체의 적이다. 그러나 이 세계의 역사를 지배자와 강자의 입장에서 보기만 할 때 항상 ‘테러’를 규탄할 때 약자를 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반성해보아야 한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헌팅턴(S. Huntington) 교수가 9.11테러에 대한 평가에서 이슬람 국가들이 이번 전쟁을 수수 방관하거나 심지어 범죄자들과 연대한다면 실제로 문명충돌을 운운한 예가 그렇다. 그의 관심은 약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강자의 논리를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잘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구 세계와 서구 기독교에 익숙한 나머지 이스라엘은 우리편이고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아랍 연맹 22개 국가와 또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13억의 무슬림을 우리의 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성서에서 말하는 정의는 오늘날 국제 사회가 펼치는 힘이 센 자와 힘이 강한 국가의 정의에서가 아니라, 약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할 때 나타난다고 믿고 있다.
하마스의 자살 폭탄테러 행동 대원들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극단주의 적으로 해석하며 팔레스타인 안에서 ‘시온주의’ 세력을 몰라 내기 위해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에 대한 살상을 자행한다. 그러나 하마스의 이러한 공격에 대해서 팔레스타인 내부에서조차도 모두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중동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하느님 말씀으로 믿는 코란은 무고한 인명 실상을 금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종교간의 충돌은 이미 11세기말에서 13세기말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이슬람 세계와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의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위해 싸웠던 "십자군 전쟁"70)에서 있었다. 십자군은 제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으나, 세력을 회복한 이슬람 군에게 다시 빼앗겼다. 1187년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이 이슬람 제국 하에 들어 온 것이다. 그들은 보호와 생존을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였다. 방어적 평화를 위하여 종교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코란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은 군주이면서도 이교도들에게 무슬림으로 개종을 강요하지 않은 관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면서도 기독교도들을 죽이지 않았다. 이것은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많은 무슬림을 학살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이슬람이 공격적인 세력이 될 수 없다.71) 오늘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자살 폭탄 테러 행위는 이슬람 세계에서는 자살이 지옥에 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다. 그들은 그 테러 행위를 자살로 보지 않고 순교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슬람의 근본주의는 지나친 서구화 내지는 세계화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되었다. 이슬람교는 약소민족의 종교로서 발생했고, 계속해서 인도주의적인 미덕을 견지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마단은 원래 이슬람 신앙에서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을 배려하는 입체적 신앙의 표현이다.72)
크리스챤 투데이(Christian Today)에 의하면 미국에서 이슬람교가 2015년까지 유대교를 제치고 제 2위의 종교가 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이슬람교가 약자들의 종교라는 인식이 미국 사회의 흑인과 소외 계층에 더욱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으로서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말콤 X(Malcom X)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2. 성서가 제시하는 평화의 길
우리는 우선 성서가 제시하는 바에 따라 두 문명의 갈등을 화해와 공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와의 평화적 모색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경계를 초월하는 특별한 영적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비록 경전들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고 고고학적, 역사적 증거가 희박하더라도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은 여전히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며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그 율법적 엄격함으로 인해 규범과 실천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게 하고 새로운 여건과 사회적 발전에 신속하게 부응하지 못하는 본질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73) 반면에 기독교는 지나치게 제도화되어 현대주의(modernism)에 영합하여 성서에서 말하는 복음의 참 의미를 간과할 위험에 처해있다. 기독교는 강자의 종교가 아니라 약자의 종교, 즉 약자를 위한 종교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복음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부시 대통령의 종교가 아니라 부시맨의 종교이어야 할 것이다.74)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인 것이다.
9.11테러는 너무나 비인도적인 범죄 행위였다.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 전쟁 역시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는 범죄 행위로 정죄 받아 마땅하다. 9.11테러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비록 테러가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항거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테러를 막기 위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테러와 전쟁은 인류가 추구해 나아가는 평화와 정의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모든 테러, 동시에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용납 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한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중하다고 선언하는 성서의 보편적 가치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코란 2장 119절에는 "알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이여 적이 침범했을 때 방어는 하되 우리의 정해진 경계를 벗어나지 말라"고 했고, 5장 32절에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 인류를 죽이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전 인류를 살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따라서 9,11테러의 주범들은 이슬람의 신앙과 배치된다. 그것은 코란을 배반한 야만의 행위에 불과하다. 이 야만의 행위는 보복 공격에서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고 한다.
나는 "예수께서 여기 계신다면 어떻게 했을까"(What would Jesus do)하고 생각해보고 싶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고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하고 한탄했을 것 같다. 구약 성경은 힘의 논리가 강조되어 있다면 신약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깃들여 있다. 예수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법과 힘의 논리를 뛰어 넘어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셨다(마
우리는 십자가를 왜곡시키는 현장에 있다. 미국은 강대국들과 연합하여 "신 십자군"의 이름으로 일어났다. 성경에 손을 얹고 미사일을 쏘았고, 예배를 드리며 전쟁 이야기를 했고, 이제는 기어코 21세기의 십자군의 물리적 전쟁으로 항구적인 자유를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얼굴 없는 테러나 무고한 테러가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한번 쉼을 갖고, 지금 우리가 반 기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는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왜 테러가 일어났는가? 왜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그리고 계속 전쟁을 수행하는가? 어쨌든 "테러" 그리고 "테러에 대한 전쟁"은 둘 다 잘못 되었다.
예언자 모하메트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했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땅에 사는 외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그들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명하셨다. 그러므로 평화를 달성해 산산이 부서진 아브라함의 영적 유산을 보수하는 일은 팔레스타인들과 이스라엘인들로부터 특단의 믿음에 기초한 행동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최근에 유대인 남자들과 시리아인, 팔레스타인, 레바논인의 DNN 분석을 실시한 결과 이들 모두가 같은 조상의 후손임이 밝혀진바 있다.
어떻게 서구문명과 이슬람의 문명이 서로 화해하며 평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마호메트의 언행을 담은 책 히디스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알라 하느님께 그대들에게 내려보낸 성령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을 정의롭게 대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주이시며 그대들의 주님이십니다"(코란 42:I5). 이것은 이슬람교의 근본 정신이 평화, 화해, 일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성서에서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우주적이고 세계적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런 근본 정신 속에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 너희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 (마5:39-45)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길 때 화해와 평화 연합과 일치를 향한 에큐메니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 즉 종교, 민족, 인종, 이념,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과 대립, 테러와 전쟁 등의 역사를 되풀이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화해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화해와 평화는 다양한 이유로 파괴된 인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더 이상 테러나 전쟁이 아니라 "호프"(Hof)75)를 이루는 평화 공동체의 삶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위기 국면에서 현 사태를 종교적 가치관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천명하면서 날마다 수많은 미사일과 첨단 무기로 공격을 가했다. 미국을 공격한 빈라덴을 보호해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원수다. 그래서 원수를 힘으로 공격한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평화의 길, 즉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힘의 국가를 동조하는 서구 기독교 국가들과 이러한 전쟁 분위기에 편승하여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이러한 힘의 세력들을 묵시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무엇을 말할까? 테러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모두가 무고한(innocent)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시켰다. 사울의 아들이며 다윗의 친구인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했을 때, "어째서 다윗을 죽여 죄 없는 피를 억울하게 흘리게 하시렵니까?"(삼상
지금 세계가 직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평화"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의 문명권으로 통합되는 과정 속에서 함께 공존해야 하는 이 세계는 빈부의 격차,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 등으로 불신과 증오와 보복이 진행되고 있다. 강자와 약자가 함께 있을 때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성서의 정신이다. 잃은 양의 비유를 보면 100마리 양 중 한 마리가 길을 잃고 있을 때, 99마리를 놓아두고 그 한 마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대’ (solidarity)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서에서 보여준 복음은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실천에 있다. 미국은 초기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난관에 부딪쳤다. 하느님은 그 어려움 속에 있는 그들을 축복 하셨다. 하느님의 약자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제 미국은 최고의 강자가 되었다. 이제 약자와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예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야만과 야만의 전쟁일 뿐, 결코 성서의 기독교적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가르침 어디에도 없는 폭력과 살육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세워진 미국이 주가 되어 행해졌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최근에 치루어진 테러와의 전쟁들은 인류정신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아 버렸다. 미국이 보복으로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세계 평화를 위해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힘으로 자존심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이제라도 미국은 성서와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가신 평화의 길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어떻게 화평을 구할 수 있을까? 전 서독 수상 빌리브란트가 말한 대로 동서의 이데올로기가 지나면 남북대결이 온다고 예언했다. 그는 특히 제3세계를 동등하게 대접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제3세계를 돌봄이 없이 지구촌의 평화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이번 미국은 현대가 가져다 준 병패중 하나인 군사문화의 유물인 힘으로의 대결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 평화와 세계평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평화를 위해 전쟁이 아니라 어떻게 제3세계와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참 정신: 낮아지고, 십자가에 죽고, 그래서 부활하는 희망찬 삶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고백하고 사는 자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섬김과 사랑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의 삶으로 무슬림 그들에게 다가갔다면 갈등과 문명 충돌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가난하고 억눌린 피 지배 계층 민들을 친구로 섬기고 대했다면 오늘날 이 비극적인 전쟁과 테러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 분명,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불신에서 얻어진 결과이고 결코 아름다운 열매는 아니다. 그러나 쫓겨난 하갈이 광야에서 죽어가는 아들 이스마엘을 바라보고 방성대곡 할 때에 하느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자를 보내어 큰 민족을 이루라고 축복하시고 샘물을 먹이시며 그 아이와 함께 하여 주셨다(창
오늘도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영적 흑암과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죽어 가는 이스마엘의 후예들을 바라보시며 사랑의 하느님은 그 옛날 하갈의 방성 대곡을 기억하시며 그의 자녀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시리라. "가라,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저들에게 찾아가서 내가 너희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처럼 너희도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렴. 그들이 왜 이렇게 사랑을 베푸냐고 묻거든 오직, 예수의 사랑 때문이라고 전하렴. 그리고 하느님은 날마다 문 열어놓고 나간 자식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당신들을 기다리시니 속히 돌아오라고 전해다오."
복음을 전하자. 예수 그리스도 그는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요, 세상의 소망이다. 기독교인은 성령 받은 자들이다. 예언자 이사야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친다. "주 야훼의 영을 내게 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사 61:1).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위력을 안 이후로는 가치관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었다. 그리스도야말로 유대인과 이방인, 즉 유대인-아랍인을 하나로 묶는 ‘평화의 주’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것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화해케 하는 성서의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다:
"이방인으로 태어난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단지 몸에다 사람의 손으로 행하는 할례를 받은 소위 할례 자들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도 없는 외국인으로서 약속의 계약에서 제외된 채 이 세상에서 희망도, 하느님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림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 졌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나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이 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이 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에페소
결론: 사랑과 평화의 삶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마치 광야와 같다. 연속되는 "테러"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의 보복, 이스라엘과 아랍 팔레스타인의 끊임없는 갈등, 자주 일어나는 아랍 이슬람 원리주의 자들의 자살테러, 부유한 서구의 미사엘 발사 등으로 세계는 파괴와 공포와 죽음 앞에서 미움의 삶을 살고 있다. 누가 이 광야 같은 춥고 어둡고 음울한 죽음의 세계에서 빛과 생명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세상의 희망을 테러에 둘 수 없다. 마찬가지로 테러와의 전쟁에 맡길 수 없다. 그것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보복의 원리일 뿐이다. 거기에는 빛도, 생명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다. 그분만이 빛이요, 생명이요, 희망이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한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의 계획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성취되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오시는 주님의 모습은 인간이 자랑하는 "힘의 문명"이 아니라 가장 미천하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춥고, 어둡고, 바람불고, 냄새나고, 거친 말구유에 오셨다.
그러나 그는 인류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2000여 년 전 ‘평화의 왕’이신 하느님께서 육을 입고 태어났을 때, 하늘의 천사들은 이렇게 칭송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눅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예루살렘을 향하는 사건에서 더욱 그 특징을 나타낸다. 예루살렘은 갈릴리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세상의 정치와 권력이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배경으로는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교권을 쥐고 있어 소외된 민중들에게는 참된 "평화"의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특히 주변 부로 밀려난 민중들에게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한 예수는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는 중요한 결단을 한다.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평화"에 대한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것은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 정치 권력과 대조되는 비폭력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자신을 ‘평화의 왕’으로 환영하는 민중의 소리를 염려하는 유대인 지도층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꾸짖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평화의 시위"는 성전을 정결케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드는 성전 주변에서 펼쳐지는 탐욕과 거짓을 폭로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평화를 향한 행로는 로마 권력과 유다 지도층의 음모로 인해 "평화의 왕"이 십자가에 제거된 것이다. 결국 그의 "새 세계", 즉 하느님 나라의 운동은 역사에 새로운 장(場)을 열었지만 "힘의 문명"을 내세우는 그룹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은 또 하나의 위대한 사건을 만든 것이다. 그의 죽음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화목제로 바쳐지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렇게 전한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들을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습니다"(엡 2:-16)
성서를 텍스트로 하는 기독교의 근본 정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이방이나 유대인이나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평화의 소식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신적 위치를 보존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빌
예수의 복음을 기록한 신약 성서 안에는 "평화"의 주제로 엮어져 있다. 어디를 보아도 ‘로마제국과 싸우라’, ‘원수들과 대적하라’는 말이 없다. 오히려 대결 구도가 있을 때마다, 평화를 도모하고 있다. 가령, 이방 세력인 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한다.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망가진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힘’의 대결이 아니라, ‘힘’의 포기다. 사탄과 마귀 등의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라는 말씀은 있으나 ‘정치적인 세력이나 어떤 집단과 싸우라’는 말은 없다.76)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요한은 우리에게 사랑의 위력을 선포하고 있다. 사랑은 미움을 녹이고 빛은 어두움을 물리친다(요일,
우리는 이 세계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하느님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그는 구유에 나시고, 나귀 타고 입성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리고 조용히 부활하셔서 이 세상의 생명으로, 이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의 희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한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것은 "힘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코란이냐 칼이냐는 양자 택일의 종교에도 서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압축된 세상 속에서 불안하게 사는 사람들 편에서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이 아닐까?
우리는 예언자 이사야가 꿈꾼 "평화의 노래"를 부르자. "그가 민족 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