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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인문과학/막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설

by 랭님 2009. 10. 22.

독일에 있어서 종교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런데 종교의 비판이란 모든 비판의 전제이다.

오류의, 제단과 화덕 앞에서의 천국적 기도祈禱가 논박당한 후에 그 오류의 세속적 실존이 논박에 내맡겨져 있다. 어떤 초인을 찾던 천상의 환상적 현실 속에서 단지 그 자신의 반영만을 발견했던 인간은 그의 참된 현실을 찾고 또 찾아야만 할 곳에서 이제 더 이상 그 자신의 가상만을, 비인간만을 찾는 경향을 가지지 않게 될 것이다.

비종교적 비판의 기저는 이것이다 :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획득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미 자기 자신을 다시 상실해 버린 인간의 자기 의식이고 자기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 그는 결코 세계 바깥에 웅크리고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 그는 인간의 세계이며 국가이며 세간世間이다. 이국가, 이 세간은 전도된 세계이므로 종교, 즉 전도된 세계의식을 생산한다. 종교는 이 세계의 일반 이론이요, 이 세계의 백과사전적 개요이며, 통속적 형태로 된 이 세계의 논리학이요, 이 세계의 유심론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며, 이 세계의 열광이요, 이 세계의 도덕적 재가載可이며, 이 세계의 장엄한 보충이요, 이 세계의 일반적 위안 근거이자 정당화 근거이다. 종교는, 인간적 본질이 아무런 진정한 현실성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인간적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그 정신적 향료가 종교인 저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지양은 인민의 현실적 행복의 요구이다. 그들의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그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라는 요구이다. 따라서 종교의 비판은 맹아적으로, 그 신성한 후광이 종교인 통곡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다.

비판은 사슬에 붙어 있는 가상의 꽃들을 잡아뜯어 버렸는데, 이는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없는 사슬을 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 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꽃을 꺾어 가지기 위해서이다. 종교의 비판은 인간을 미몽에서 깨워 일으키는데, 이는 인간이 각성된, 분별 있는 인간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자신의 현실을 형성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그리고 그의 현실적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종교는 단지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환상적 태양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피안彼岸이 사라진 뒤에, 차안此岸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임무이다. 인간의 자기 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뒤에, 그 신성하지 않은 형태들 속의 자기 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역사에 봉사하는 철학의 임무이다. 이리하여 천상의 비판은 지상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전환된다.

이하의 상론[2] ―이러한 작업에의 한 기여인데―은 다른 어떤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독일에 닿아 있다는 이유 때문에, 무엇보다도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 즉 독일 국가 철학 및 법철학에 닿아 있다.

만약 사람들이 독일의 현 상태 그 자체에서 시작하려 한다면, 비록 유일하게 알맞은 방식으로, 즉 부정적으로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여전히 시대착오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현재의 부정조차도 이미 현대 민족들의 역사적 헛간 속에서 먼지투성이의 사실로서 발견된다. 내가 분바른 편발을 부정하다 해도, 나는 여전히 분바르지 않은 편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1843년의 독일의 상태를 부정한다 해도, 프랑스적 시간 계산에 따르면 1789년에도 있을까 말까 하고, 하물며 현재의 초점에는 더더욱 있지 않다.

정말이지, 독일의 역사는 역사상 어느 민족도 시범을 보인 적이 없고, 모방하지도 않을 하나의 움직임에 대해 우쭐해 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현대 민족들의 혁명을 공유함이 없이 그 민족들의 복고를 공유하였다. 첫째 다른 민족들이 혁명을 감행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둘째 다른 민족들이 반혁명에 시달렸기 때문에, 즉 한 번은 우리의 영주들이 겁을 먹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한 번은 우리의 영주들이 전혀 겁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복고되었다. 우리들, 선두에 선 우리의 목자들은 항상 자유의 장례식 날에만 단 한 번 자유의 사회 속에 있었다.

오늘의 비열함을 어제의 비열함을 통해서 합법화하는 학파, 가죽 채찍이 오래된, 조상 전래의, 역사적 가죽 채찍이자마자 그 채찍에 대항하는 농노의 모든 절규를 반란이라고 공언하는 학파, 이스라엘의 신이 그의 종 모세에게 그랬듯이 역사가 그들에게만 후천적으로 가리켜 보이는 학파, (이들은) 역사 법학파[3](이다). 따라서 이 역사 법학파는 자신들이 독일 역사의 발명품이 아니라면 독일 역사를 발명했을 것이다. 샤일록, 그러나 종으로서의 샤일록인 이 역사 법학파는 인민의 가슴으로부터 도려낸 매파운드의 살코기를 위해서 자기들의 증서, 자기들의 역사적 증서, 자기들의 기독교적·게르만적 증서를 확신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혈통으로 보면 독일내기들이고 반성反省으로 보면 자유 분방한 자들인 선량한 열광자들은 우리의 자유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 저쪽, 튜튼 족의 원시림 속에서 찾는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의 역사가 단지 원시림속에서 발견된다면, 그것은 무엇에 의해 멧돼지의 자유의 역사와 구별될 것인가? 게다가 주지하다시피 : 숲 속으로 외친 것은 외친 그대로 숲 밖으로 울려 나온다. 그렇다면, 튜튼 족의 원시림에 평화를!

독일의 상태들에 전쟁을! 물론이다! 그 상태들은 역사의 수준 이하에 있고 모든 비판(의 수준) 아래에 있지만 비판의 대상으로 남는데, 이는 인간성의 수준 이하에 있는 범죄자가 사형 집행인의 대상으로 남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상태와의 투쟁에 있어서 비판은 두뇌의 열정이 아니라 열정의 두뇌이다. 비판은 해부용 칼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이다. 비판의 대상은 비판의 적, 논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절멸시키고자 하는 적이다. 왜냐하면 저 상태의 정신은 논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래 독일의 상태는 결코 사유할 만한 객체들이 아니라, 경멸할 만한 또한 경멸받고 있는 실존태이다. 비판 자체는 이 대상과 자기 자신 사이의 화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비판과 이 대상의 사이는 끝장나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 더 이상 자기 목적으로서 나타나지 않고, 수단으로서 나타날 뿐이다. 비판의 본질적 파토스는 분노이며 비판의 본질적 작업은 탄핵이다.

온갖 비참함의 존속에 의해 연명하고 있으며 통치의 비참함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러한 통치 체제의 틀에 끼워져 있는 모든 사회적 영역들 상호간의 숨막힐 듯한 압박에 대한, 실행 없는 일반적인 침체에 대한, 시인되고도 오인되고도 있는 편협함 등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다.

얼마나 볼 만한 풍경인가! 사소한 반감, 시커먼 양심, 조야한 범용성을 갖고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극히 잡다한 종족들, 그리고 다름아닌 서로 믿을수 없으며 서로 의심이 가는 그들의 태도로 인하여―서로 다른 격식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모두가 아무 차이 없이 그들의 영주들에 의해 인가된 실존으로서 취급받고 있는 극히 잡다한 종족들로의 사회의 끝없는 분열. 그리고 이것조차, 즉 그들이 지배받고, 통치되고, 소유되는 것조차 하늘이 용인해 준 것이라고 그들은 시인하고 고백해야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저 지배자들 자신으로 말하면, 그 위대함은 그 숫자에 반비례한다!

이러한 내용을 다루는 비판은 육박전 속의 비판이며, 육박전에 있어서는 그 적이 고상한 적, 대등한 적, 흥미로운 적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적을 적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인에게 어느 한 순간도 자기 기만과 단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 억압에다가 억압의 의식을 부가함으로써 현실적 억압을 더욱 억압적이게 만들어야 하며, 치욕을 공개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치욕적이게 만들어야 한다. 독일 사회의 각 영역들을 독일 사회의 치부로 묘사하여야 하며, 이 화석화된 상태에 그 고유의 멜로디를 노래하여 들려 줌으로써 그 화석화된 상태가 춤을 추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 민족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는 그 민족이 자기 자신 앞에서 경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거부할 수 없는 욕구는 충족되는 바, 민족들의 욕구들은 그 자체로 그 충족의 궁극적 근거이다.

그리고 현대 민족들에게 있어서조차 독일의 현 상태의 고루한 내용에 대한 이 투쟁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데, 왜냐하면 독일의 현 상태는 구체제의 솔직한 완성이며 구체제는 현대 국가의 숨겨진 결점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정치적 현대에 대한 투쟁은 현대 민족들의 과거에 대한 투쟁이며, 그리고 이 과거의 자취들 때문에 현대 민족들은 여전히 시달림을 받고 있다. 현대 민족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비극을 체험했던 그 구체제가 독일적 망령으로서는 자신의 희극을 연출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현대민족들에게 교훈적이다. 구체제가 세계의 선재적先在的권력이고 이에 반해 자유가 개인적인 착상이었던 한, 한마디로 구체제 자체가 자신의 권능을 믿었고 또 믿어야만 했던 한, 구체제의 역사는 비극적이었다. 현존 세계 질서로서의 구체제가 막 생성하는 하나의 세계와 투쟁했던한, 결코 개인적이 아닌 세계사적인 오류가 구체제측에 있었다. 따라서 구체제의 몰락은 비극적이었다.

이에 반해 하나의 시대 착오, 일반적으로 인정된 공리들에 대한 하나의 명백한 모순, 세계 전람회에 출품된 하찮은 구체제인 오늘날의 독일의 체제는 자기 자신을 신뢰한다고 여전히 착각하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이와 동일한 착각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오늘날의 독일의 체제가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신뢰하고 있다면, 오늘날의 독일의 체제는 그 고유한 본질을 낯선 본질의 가상 아래 숨기려고 들고 자신의 도피처를 위선과 궤변 속에서 모색하게 될 것인가? 현대적 구체제는, 그 현실적 주인공들이 죽고 없는 세계 질서의 희극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철저하고, 낡은 등장 인물을 무덤으로 보낼 때에 많은 국면들을 통과한다. 세계사적 등장 인물의 최후의 국면은 그것의 희극이다. 아이스킬로스의 묶여 있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이미 한 번 비극적으로 치명적 부상을 입은 바 있는 그리스의 신들은 루키아노스의 대화편에서 또 한 번 희극적으로 죽어야 했다. 왜 역사의 진행이란 이러한가? 인류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즐겁게 이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 즐거운 역사적 사명을 독일의 정치적 세력들에게 요구한다.

그런데 현대의 정치·사회적 현실 자체가 비판 아래 놓여지자마자, 따라서 비판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문제들로 고양되자마자, 비판은 독일의 현상태 외부에 존재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대상을 자신의 대상 아래에서 붙잡게 되고 말 것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산업의, 일반적으로 부의 세계의 정치적 세계에 대한 관계는 현대의 한 중심 문제이다. 어떠한 형식으로 이 문제는 독일인들을 몰두시키기 시작했는가? 보호 관세, 무역 금지제, 국민 경제의 형식으로이다. 독일주의는 인간으로부터 물질로 옮아갔으며, 그리하여 어느 날 아침 우리의 면화 기사騎士들과 철 영웅英雄들은 자신들이 애국자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독일에서 독점의 대내적 주권은 대외적 주권이 부여됨에 의해서 인정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끝나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독일에서는 지금 시작되고 있다. 이 나라들이 그것에 대항해서 이론적으로 소동을 일으키고 있고 사람들이 속박을 견디어 내는 것처럼 가까스로 견디어 내고 있는 그 낡고 부패한 상태가 독일에서는 아름다운 미래의 떠오르는 아침 노을로서 환영받고 있는바, 이 미래는 좀처럼 간교한[4] 이론으로부터 인정사정없는 실천으로 넘어갈 엄두를 못내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문제가 정치 경제 혹은 부에 대한 사회의 지배라고 되어 있는 반면에, 독일에서는 국민 경제 혹은 국민에 대한 사적 소유의 지배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그 최후의 결과에까지 나아간 독점을 지양하는 것이 문제이다 ; 독일에서는 독점을 최후의 결과로까지 몰고 가는 것이 문제이다. 거기에서는 해결이 문제인데 여기에서는 겨우 충돌이 문제이다. 이는 현대적 문제들의 독일적 형태들에 대한 충분한 일례, 우리의 역사가 마치 서투른 신병처럼 진부한 역사들을 보습 교련 補習敎鍊 받는 임무만을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일례이다.

따라서 만약 독일의 전체적 발전이 독일의 정치적 발전을 앞지르지 못한다면, 어느 한 독일인은 현대의 문제들에 기껏해야 어느 한 러시아 인이 그것에 관여할 수 있는 만큼만에 관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개 개인이 국가의 한계들에 의해 속박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한 개인의 해방에 의해 국가 전체가 해방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리스가 한 사람의 스키타이 인[5]을 자국의 철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느다고 해서 스키타이 인들이 그리스 문화로 단 한 발짝이라도 전진했던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독일인들은 스키타이 인들이 아니다.

고대 민족들이 그들의 전사前史를 상상 속에서, 신화 속에서 체험한 것처럼 우리 독일인들은 우리의 후사後史를 사유 속에서, 철학 속에서 체험하였다. 우리는 현대의 역사적 동시대인들이지 않은 채, 그 철학적 동시대인들이다. 독일 철학은 독일 역사의 이념적 연장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실질적 역사의 미완성작들대신에 우리의 이념적 역사의 유작, 즉 철학을 비판할 때, 우리의 비판은 현대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그 문제들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 그것이 문제이다. 선진 민족들의 경우에는 현대적 국가 상태와의 실천적 반목인 것이, 이 상태 자체가 부재한 독일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상태의 철학적 반영과의 비판적 반목이다.

독일의 법철학 및 국가 철학은 공식적인 현대적 현재와 동급으로 서 있는 유일한 독일 역사이다. 따라서 독일 민족은 이러한 자신의 몽사夢史도 자신의 현존 상태들에 덧붙여야 하며, 이러한 현존 상태들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상태의 추상적인 계속도 비판에 부쳐야 한다. 독일 민족의 미래는 자신의 실질적 국가 및 법의 상태들의 직접적 부정에도 제한될 수 없고, 자신의 이념적 국가 및 법의 상태들의 직접적 실행에도 제한될 수 없다. 왜냐하면 독일 민족은 자신의 이념적 상태들 속에 자신의 실질적 상태들의 직접적 부정을 가지고 있고, 결국 이웃 민족들에 대한 관조 속에서 자신의 이념적 상태들의 직접적 실행을 이미 거의 재유실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실천적인 정치적 당파는 독일에서 철학의 부정을 요구한다. 이 당파의 부당함은 그 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실행하지도 않고 실행할 수도 없는 요구에 머물러 있는 데에 있다. 이 당파는 철학에 등을 돌리고 외면하며―철학에 대해 몇 마디 분노에 찬 상투어들을 중얼거림으로써 저 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자신의 시야의 협소함으로 인해 이 당파는 또한 마찬가지로 철학을 독일의 현실의 영역 속에 넣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철학을 독일적 실천과 그 실천에 봉사하는 이론들 아래에 있는 것이라고 망상하고 있다. 당신들은 사람들이 현실적 삶의 맹아를 실마리로 잡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독일 민족의 현실적 삶의 맹아가 지금까지 단지 독일 민족의 두개골 속에서만 자라 왔다는 것을 잊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 당신들은 철학을 실현하지 않고서는 철학을 지양할 수 없다.

철학으로부터 유래한 이론적인 정치적 당파는 단지 정반대의 요인들만을 지닌채 동일한 부당함을 범하였다.

이 당파는 현재의 투쟁 속에서 단지 독일적 세계에 대한 철학의 비판적 투쟁만을 보았다.이 당파는 지금까지의 철학 자체가 이세계에 속하며, 비록 관념적일지라도 이 세계의 보충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 당파는 철학의 전제들에서 출발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결론들에 안주하거나, 또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요구들과 결론들―그것들의 정담함을 전제로 할 때―이[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반대로 단지 지금까지의 철학, 즉 철학으로서의 철학의 부정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다른 곳에서 가져온 요구들과 결론들을 철학의 직접적 요구들과 결론들이라고 부르는 속에서, 자신의 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당파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서술은 보류한다. 이 당파의 근본 결함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이 당파는 철학을 지양하지 않고서 철학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헤겔에 의해서 가장 일관되고 풍부하며 궁극적인 파악을 얻은 독일의 국가 철학 및 법철학에 대한 비판은 현대 국가 및 그와 결부된 현실의 비판적 분석뿐만 아니라 독일의 정치적·법적 의식―이 의식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보편적인, 학學으로까지 고양된 표현은 바로 사변적 법철학 자체이다―의 기존 양식 전체에 대한 단호한 부정, 이 양자이다. 오직 독일에서만 이 사변적 법철학, 현대 국가에 대한 이 추상적이고 과도한 사유―이 사유의 현실은 피안에 머물러 있으며, 또한 이 피안이라는 것은 라인 강 저편에만 놓여 있다―가 가능했었다 : 거꾸로 또한 현대 국가의 독일적 사유상思惟像, 현실적 인간을 추상한 사유상은, 현대 국가 자체가 현실적 인간을 추상하고 또한 인간 전체를 오직 상상적인 방식으로만 만족시키기 때문에만, 그리고 바로 그런 한에 있어서만 가능했었다. 독일인들은 다른 민족들이 실행했던 것을 정치 속에서 사유했다. 독일은 다른 민족들의 이론적 양심이었다. 독일 민족의 사유의 추상과 오만은 항상 독일 민족의 현실의 일면성 및 낙후성과 보조를 맞추었다. 따라서 독일 국가 제도의 현 상태가 구체제의 완성, 즉 현대 국가의 살 속의 가시의 완성을 표현할 때, 독일 국가지國家知의 현 상태는 현대 국가의 미완성, 즉 그 살 자체의 손상을 표현한다.

독일의 정치적 의식의 기존 양식에 대한 단호한 반대자로서 사변적 법철학 비판은 자기 자신 속에서 헤매지 않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오직 다음과 같은 하나의 수단만이 존재하는 과제들로 나아간다 : 실천

다음이 문제이다 : 독일은 원리의 높이에 있는 실천에 도달할 수 있는가? 즉 독일은, 독일 민족을 현대 민족들의 공식적 수준에까지 올려 세울 뿐 아니라 이 민족들의 바로 다음의 미래가 될 인간적 높이에까지 올려 세울 혁명에 도달할 수 있는가?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또한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으로 된다. 이론은 대인적對人的으로 증명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되자마자 대인적으로 증명된다. 근본적이라 함은 사태를 뿌리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뿌리는 인간 자신이다. 독일 이론의 근본주의에 대한 명백한 증거, 그러므로 독일 이론의 실천적 에네르기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그것이 종교의 결정적이고 확실한 지양에서 출발했다는 것에 있다. 종교의 비판은 인간은 인간에게 지고한 존재라는 가르침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종교의 비판은 인간이 천대받고 예속되고 버림받으며 경멸받는 존재로 있는 모든 관계들을 전복시키라는 정언 명령으로 끝나는데, 이 관계는 견세犬稅가 구상되고 있을 때의 어떤 프랑스 인의 다음과 같은 외침에 의해서보다 더 잘 묘사될 수는 없다 : 불쌍한 개들아! 사람들이 너희를 인간처럼 취급하려고 하는구나!

역사적으로도 이론적 해방은 독일에 있어서 특별하게 실천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독일의 혁명적 과거는 요컨대 이론적이다. 즉 그것은 종교 개혁이다. 당시에는 승려의 머리 속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지금은 철학자의 머리 속에서 혁명이 시작된다.

확실히 루터는 헌신에서 나오는 예종을 확신에서 나오는 예종으로 대체한 결과, 헌신에서 나오는 예종을 극복하였다. 그는 신앙의 권위를 회복시킨 결과, 권위에의 신앙을 타파하였다. 그는 평신도들을 성직자로 변화시킨 결과, 성직자들을 평신도들로 변화시켰다. 그는 종교성을 내적 인간으로 만든 결과, 인간을 외적 종교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심장을 사슬로 묶은 결과, 몸을 사슬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티즘은 과제의 올바른 해결은 아니었지만 과제의 올바른 설정이기는 했다. 더 이상 평신도와 그의 바깥의 성직자의 투쟁이 문제가 아니고, 평신도와 그 자신의 내적 성직자, 그의 성직자적 본성이 문제였다. 그리고 독일 평신도들의 성직자로의 프로테스탄트적 전화가 평신도 교황인 영주들을 그들의 승려 계급들인 특권층들 및 속물들과 더불어 해방시켰다면, 성직자적 독일인들의 인간으로의 철학적 전화는 그 민족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 영주에 머물지 않듯이 재화의 세속화도, 특히 기만적인 프로이센이 실행에 옮겼던 바의 교회 재산의 몰수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옛날에 독일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었던 사건인 농민 전쟁은 신학에 부딪혀 좌초하였다. 신학 자체가 좌초된 오늘날 독일 역사상 가장 자유스럽지 못한 사실인 우리의 현 상태는 철학에 부딪혀 산산조각날 것이다. 종교 개혁 전날에 공식적 독일은 로마의 가장 무조건적인 노예였다. 독일 혁명 전날에 공식적 독일은 로마의 무조건적인 노예라기보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시골융커들과 속물들의 무조건적인 노예이다.

그런데 근본적 독일 혁명은 중대한 난관에 봉착한 듯이 보인다.

혁명들은 요컨대 어떤 수동적 요소들, 어떤 물질적 기초를 필요로 한다. 이론은 항상 어떤 민족의 욕구들의 현실화인 만큼 그 민족 속에서 현실화된다. 그런데 독일적 사상의 요구들과 독일적 현실의 대답들 사이의 엄청난 분열에 시민 사회의 국가와의, 그리고 시민 사회의 자기 자신과의 엄청난 분열이 조응하게 될 것인가? 이론적 욕구들이 직접적으로 실천적 욕구들이 될 것인가? 사상이 실현을 재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현실이 스스로 사상에로 쇄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독일은 현대 민족들과 동시에 정치적 해방의 중간 단계들에 올라가지 못하였다. 독일은 자신이 이론적으로 극복한 단계조차 실질적으로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독일은 한 번의 목숨을 건 도약으로 자기 고유의 한계뿐만 아니라 동시에 현대 민족들의 한계들, 독일이 현실 속에서 자신의 현실적 한계들의 해방이라고 느껴서 추구해야만 하는 바의 한계들도 뚸어넘을 수 있을까? 근본적 혁명은, 바로 그것의 전제들과 탄생지들을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근본적 욕구들의 혁명 이외의 것일 수 없다.

그러나 독일이 현대 민족들의 발전의 현실적 투쟁들에서 활동적인 편에 가담하지 않은 채 다만 사유의 추상적 활동을 갖고서 현대 민족들의 발전에 동행했을 때에, 다른 한편 독일은 이 발전의 향유, 이 발전의 부분적 만족은 공유하지 못한 채 이 발전의 고통들을 공유한 것이다. 한편에서의 추상적 활동에는 다른 한편에서의 추상적 고통이 조응한다. 따라서 독일은 언젠가 유럽적 해방의 수준에 서 있게 되기 전에, 어느 날 아침 유럽적 몰락의 수준에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독일을 기독교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물신 숭배자에 비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우선 독일의 정부들을 고찰한다면, 그 장점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 못한 현대 정치계의 문명적 결점들을 우리가 충분히 향유하고 있는 구제도의 야만적 결점들과 결합하도록, 그리하여 독일이 자신의 현상태를 초월하는 국가 건설에 조리 있게 안 되면 부조리하게라도 관여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시대 추세, 독일의 상태, 독일적 교양의 입장, 마지막으로 [독일]고유의 다행스런 본능 등이 독일 정부들에게 강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소위 입헌 독일처럼 그렇게 분별없이 입헌적 국가 제도의 실상들을 공유하지 않고 그것의 모든 허상들을 순진하게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세상에 있을까? 혹은 검열의 고통을, 언론 자유를 전제하고 있는 프랑스의 구월법[6]의 고통과 결합시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독일 정부다운 착상이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로마의 만신전안에서 모든 민족들의 신들을 보았던 것처럼, 신성 로마적 독일 제국 안에서 모든 국가 형식들의 죄악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절충주의가 지금까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정도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특히 한 독일 국왕[7]의 정치적·미적 대식大食이 보증을 서고 있는데, 그는 봉건적이든 관료적이든, 절대적이든 입헌적이든, 전제적이든 민주주의적이든 가리지 않고 왕권의 모든 역할들을, 인민의 인신에 의해서 안 되면 몸소, 인민을 위해서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행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독자적 세계로 구성된 정치적 현대의 결점으로서의 독일은 정치적 현대의 일반적 한계들을 내던지지 않고서는 독일에 특유한 한계를 내던질 수 없을 것이다.

독일에 있어서는 근본적 혁명,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해방이 유토피아적 꿈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분적 혁명, 단지 정치적일 뿐인 혁명, 집의 기둥을 그대로 둔 혁명이 유토피아적 꿈이다. 하나의 부분적 혁명, 단지 정치적일 뿐이 혁명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시민 사회의 한 부분이 자신을 해방시키고 보편적 지배에 도달하는 것에, 어떤 특정 계급이 자신의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사회의 보편적 해방을 도모하는 것에 근거한다. 이 계급은 사회 전체를 해방시키지만, 단 사회 전체가 이 계급의 입장 속에 있다는 전제, 따라서 예를 들면 화폐와 교양을 소유하거나 혹은 임의로 획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해방시킨다.

시민 사회의 어떠한 계급도 열광이라는 계기, 그 속에서 어떤 계급이 사회 일반과 우애롭게 지내고 융합하여 사회 일반과 혼동되며 그 보편적 대표자로 느껴지고 인정되는 어떤 계기, 어떤 계급의 요구들과 권리들이 진실로 사회 자체의 권리들과 요구들로서 존재하게 되는 어떤 계기, 어떤 계급이 현실적으로 사회의 머리와 사회의 심장으로 존재하게 되는 어떤 계기를 자기 자신과 대중 속에서 유발시키지 않고서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어떤 특수한 계급은 오직 사회의 보편적인 권리들이라는 이름으로만 보편적 지배를 자신에게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해방자적 지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자신의 영역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모든 영역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에네르기와 정신적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민족의 혁명과 시민 사회의 어떤 특수한 계급의 해방이 동시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한 신분이 사회 전체의 신분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거꾸로 그 사회의 모든 결점이 다른 한 계급에 집중되어야만 하고, 어떤 특정 신분이 보편적 장해障害의 신분, 보편적 제약의 화신이어야 하며, 한 특수한 사회적 영역이 세간 전체의 악명 높은 침해라고 여겨져서 이 영역으로부터의 해방이 보편적 자기 해방으로 나타나도록 되어야만 한다. 한 신분이 단연코 해방의 신분이기 위해서는 거꾸로 다른 한 신분이 공공연한 압제의 신분이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 귀족과 프랑스 승려 계급의 부정적·보편적 의의는 우선 인접하여 대립하는 부르주아지라는 계급의 긍정적·보편적 의의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에 있어서 사회의 부정적 대표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수미일관함, 예리함, 용기, 무자비함 등이 어떤 특수한 계급에게도 결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신분에게도 비록 일시적으로라도 민족혼과 동일시되는 바의 저 영혼의 폭, 물질적 힘이 정치적 힘이 되도록 고무하는 저 천재성, 다음과 같은 반항적 구호를 적에게 내던질 수 있는 저 혁명적 용맹성이 결여되어 있다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어야 한다. 개인들뿐만 아니라 계급들의 독일적 도덕과 성실함의 본줄기를 이루는 것은 오히려 저 겸손한 이기주의인바, 이것은 자신의 편협함을 주장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주장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이기주의이다. 따라서 독일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의 관계는 극적이지 않고 서사적이다. 개개 영역들이 자각하기 시작하고 다른 영역들과 나란히 자신의 특수한 요구들을 내걸기 시작하는 것은 이 영역들이 압박을 받자마자가 아니라 시대 추세가 이들 영역의 관여 없이도 이들 영역의 편에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만만한 깔개를 창출하자마자이다. 독일 중간계급의 도덕적 자부심조차 다른 모든 계급들의 속물적 시시함의 일반적 대표라는 의식에 기인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때에 맞지 않게 왕좌에 오르는 것은 독일 국왕들만이 아니다.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기도 전에 패배를 겪으며 자신에 대립해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도 전에 자기 고유의 한계를 발전시키며 자신의 관대한 본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도 전에 편협한 본성을 주장하는 것은 시민 사회의 모든 영역들인바, 그 결과 위대한 역할의 기회조차 나타나기도 전에 항상 지나가 버리고, 각각의 계급들은 그들 위에 서 있는 계급과의 투쟁을 시작하자마자 그들 밑에 있는 계급과의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중각 계급은 자신의 입장으로부터 해방의 사상을 파악할 엄두를 못 내고 있고, 그리고 이미 사회적 상태의 발전과 정치 이론의 진보는 이러한 입장 자체가 구태 의연한 것임을 혹은 적어도 문제투성이의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사람이 모든 것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인 걸로 족하다. 독일에서는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것일 수도 없다. 프랑스에서는 부분적 해방이 보편적 해방의 근거이다. 독일에서는 보편적 해방이 모든 부분적 해방의 필수조건이다. 프랑스에서는 단계적 해방의 현실성이, 독일에서는 단계적 해방의 불가능성이 온전한 자유를 낳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의 각 계급들이 정치적 이상주의자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특수한 계급으로가 아니라 사회적욕구 일반의 대표자로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해방자의 역할은 극적인 운동속에서 차례차례 프랑스 국민의 다양한 계급으로 옮아 가서, 마침내 사회적 자유를 더 이상 특정 전제, 즉 인간 바깥에 놓여 있으면서도 인간 사회에 의해 창조된 조건들 아래에서 실현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현존의 모든 조건들을 사회적 자유라는 전제하에서 조직하는 그러한 곅급에 다다른다. 반면에, 정신적 삶이 비실천적인 만큼이나 실천적 삶이 몰정신적인 독일에서는 시민사회의 어떠한 계급도, 그들이 자신의 직접적 처지에 의해서, 물질적 필연성에 의해서, 자신의 사슬 자체에 의해서 강요받기 전에는 보편적 해방의 요구와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면 독일 해방의 적극적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대답 : [그 가능성은]뿌리깊은 굴레에 얽매여 있는 한 계급, 결코 시민 사회의 계급이 아닌 시민 사회의 한 계급, 모든 신분들의 해체인 한 신분, 자신의 보편적 고통 때문에 보편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특수한 부당함이 아니라 부당함 그 자체가 그들에게 자행되기 때문에 어떤 특수한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 한 영역, 더 이상 역사적 권원을 증거삼ㅇ르 수 없고 단지 인간적 권원만을 증거삼을 수 있는 한 영역, 독일 국가 제도의 귀결들과 일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제들과 전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 영역, 마지막으로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그리하여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들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해방될 수 없는 한 영역,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고 따라서 인간의 완전한 되찾음에 의해서만 자기 자신ㅇ르 찾을 수 었는 한 영역의 형성에 [있다]. 하나의 특수한 신분으로서의 사회의 이와 같은 해체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들이닥친 산업 운동에 의해서 비로소 독일에서 생성하기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연 발생적으로 성립한 빈민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생산된 빈민이, 사회의 중압에 기계적으로 짓눌린 인간 대중이 아니라 사회의 급격한 해체로부터, 특히 중간 신분의 해체로부터 출현한 인간 대중이-비록 당연하게도 자연 발생적 빈민과 기독교적·게르만적 농노층도 점차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열 속에 들어온다 할지라도-[주로]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존의 세계질서의 해체를 고지할 때, 그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현 존재의 비밀을 말해 버렸을 뿐인데,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세계 질서의 사실적 해체이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사적 소유의 부정을 요구할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원리로 고양시켰던 것, 프롤레타리아트의 조력 없이 이미 프롤레타리아트 속에 사회의 부정적 결과로서 체현되었던 것ㅇ르 사회의 원리로 고양시킬 따름이다. 말馬을 자신의 말이라고 부르듯이 인민을 자신의 인민이라고 부를 때에 독일 국왕이 생성된 세계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권리와 동일한 권리를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성하는 세계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다. 그 국왕은 인민을 자신의 사적 소유라고 선언함에 의해서 단지 사적 소유자가 국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사상의 번개가 이 소박한 인민적 지반 속으로 깊숙이 내리꽂히자마자 독일인들의 인간으로의 해방은 성취될 것이다!

결론을 요약하자 :

유일하게 실천적으로 가능한 독일 해방은 인간을 인간의 최고의 존재라고 선언하는 그러한 이론의 관점 위에서의 해방이다. 독일에 있어서 중세로부터의 해방은 동시에 중세의 부분적 극복으로부터의 해방으로서만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모든 종류의 노예상태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노예상태도 타파할 수 없다. 근본적 독일은 근본에서부터 혁명하지 않고서는 혁명할 수 없다. 독일인의 해방은 인간의 해방이다. 이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요, 그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양 없이 철학은 자기를 실현할 수 없으며, 철학의 실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지양할 수 없다.

모든 내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독일 부활의 날은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 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다.


NOTES

[1] 논문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설]은 1844년 2월 {독불연보}에 발표되었다. 이 노작 속에는 맑스의,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의 이행과 혁명적 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반영되어 있다. (이 노작속에서) 맑스는 독일에서의 혁명의 가능성을 연구하고 근거지었으며 공공연히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지하였다. 그는 헤겔 관념론에 대한 비판을 완성하였고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이론적 비판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정치적 투쟁들과 결합되어야만 한다는 견해에 도달하였다. 맑스는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인식에 이르렀으며 혁명적 이론과 혁명적 실천의 통일의 원리를 정식화하였다.

[2] 맑스의 미완성 원고인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를 말하고 있다(맑스·엥겔스 저작집, 제1권, 201-333면을 보라)

[3] 역사학 및 법학에 있어서 반동적인 한 당파인 역사 법학파는 18세기 말 독일에서 성립하였다. 역사 법학파의 대표자 구스타프 후고와 프리드리히 칼 폰사비니는 영원한 역사적 전통을 들어 귀족의 특권들과 봉건적 제도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4]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보호 관세 선동에 대한 풍자.

[5] 철학자 아나카르시스를 말한다.

[6] 1835년 9월에 프랑스 정부는 국왕 루이-필립에 대한 7월 28일의 암살 기도를 구실로 삼아 일련의 반동적 법률들을 공포하였다. 이 법률들은 배심 재판소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언론에 대하여 강력한 제재들을 가하는 것이었다.

[7]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