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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흔들리는 상아탑, 대학(大學)은 어디에?

by 랭님 2010. 4. 14.

얼마 전 대학생으로서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중앙대학교에서 대대적인 학문단위 재조정 최종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현행 18개 단과대학의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학 46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수정안이다. 취지는 2018년까지 국내 5개, 세계 100대 명문대에 진입하겠다는 것으로, 중복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학과를 줄여 경쟁력이 있는 학과만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학과의 경쟁력이란 전문 기술과 직결되거나 취업에 유리한 정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두산중공업 회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시작되었다. 작년에는 본격적으로 구조계획위원회가 발족되어 경영대 신입생은 전체 신입생 모집 인원의 27%인 1200명까지 확대하고 나머지 단과대 인원은 대폭 줄이거나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계획은 학생들의 의견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중앙대 교지인 ‘중앙문화’를 학교 측에서 강제 수거하고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 등도 불허하는 등 강압적인 방식 아래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학생들과 교수진들도 긴급 토론회를 통해 의견을 피력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중앙대 학문단위 일방적 재조정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되어 본관 앞 천막 농성에도 돌입했지만 강제 철거되고 결국 지난 8일 구조조정 최종안이 최종 확정되었다고 한다.

 

 <중앙대 학생들의 시위 현장>

 <타워크레인에 걸린 현수막>

 

  

 중앙대 사태 뿐 아니라 ‘대학의 기업화’는 명문대를 자퇴하는 학생들이 줄지어 이슈가 되면서 다시금 생각해 볼 문제가 되었다. 최근 내가 다니는 고려대학교의 한 3학년 학생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다고 선포하고 대자보를 붙였다. 등굣길에 보게 된 대자보에는 직접 손으로 쓴 글씨에 결연한 의지가 묻어있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얼마 후 나의 예상대로 이 학생은 언론에도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고, 얼마 후에는 서울대학교의 학생도 자퇴를 선언하여 한 번 더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고려대에 붙은 자퇴 선언 대자보>

 

 

문대에 힘들게 진학한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사태가 왜 생기는 걸까? 처음에는 너무 호기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대자보를 찬찬히 읽어보니 같은 학생으로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대자보는 기업의 하청업체가 되어버린 대학에서 하나의 부품이 아니라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대학을 떠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오늘날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일정 부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떠날 용기가 없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또 강요된 경쟁에 떠밀려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내가 느끼기에도 지금의 대학가에는 낭만은 커녕 학문에 대한 진지한 열기조차 찾아볼 수 없고 다들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다. 이 대자보 사태의 여파로 사람들은 청년실업, 등록금 인상과 신자유주의의 위기 등 많은 사회 문제들에 대해 앞다투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대학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영역마저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을 따라잡기 급급하다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은 취업에 유리한 공부만 가르쳐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취업률만을 잣대로 삼아 경쟁력 없는 학과를 폐지한다면 철학이나 역사 등 인문학이 존폐 위기에 몰릴 것이 분명하다. 중앙대에서는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러한 결단을 한다고 했지만 과연 대학의 경쟁력과 학생들의 취업률이 일치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여러 기관에서 평가하고 있는 대학 순위는 취업률 뿐 아니라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학진 논문등재 실적, 국제학술지 논문등재 실적, 신입생 충원율, 중도탈락률 등을 골고루 포함하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취업과 직접 연관이 없다고 하여 인문학을 없애고 실용 학문만 양성한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니라 직업학교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만 따져도 대학(大學)은 ‘여러 학문분야를 연구하고 지도자로서 자질을 함양하는 고등교육기관’을 뜻하는데 과연 중앙대의 학과통폐합 계획에 ‘여러 학문분야’란 존재하는가?

 

인문학은 기초학문으로서 가시적 효과를 내기 어려워 학과 체제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기반이 약해질 것이며 다른 실용 학문 또한 기초학문에서 응용된 형태이기 때문에 함께 위험해 질 수 있다. 또한 인문학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경제 효과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학문도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여러 기업의 CEO들이 모인 자리에서 복잡한 수치들을 보여주는 것보다 시를 낭송했을 때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에서 강조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또한 인문학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만 돈을 벌 수 있는데 경제학과 회계학의 논리만 가지고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인문학에 속하는 영문학과 실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학을 함께 전공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국제학에서는 국제 경제와 국제 정치, 그리고 국제 경영에 대해 배우지만 실제로 일을 했을 때는 오히려 영문학에서 배운 내용이 도움이 된 적이 있다. 인턴으로 홍보 부서에서 일을 할 때 생전 처음 접하는 고객과의 관계가 쉽지 않았는데 수업 시간에 배웠던 문학 작품의 주인공을 통해 지혜를 얻었던 것이다. 나에게 문학 공부는 그 자체로도 너무 즐겁고 내 삶과 일,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영감을 준다. 물론 인문학 이외의 비인기 학과들도 모두 각각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학교의 주체는 학생이 되어야 하는데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학교 입장에서 돈이 되는 학문만 지원하겠다면 이를 두고 대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대학, 그리고 경쟁력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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