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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진실에 대한 의무

by 랭님 2009. 2. 11.

                                 보스턴 리갈 중 엘리엇 일병 소송에 대한 앨런 쇼의 최후변론

우선, 이 소송은 반전주의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엘리엇 일병은 전쟁을 지지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전 반대였다가 다시 찬성하게 됐지만 다시 반대하게 됐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죠 제가 원래 이랬다 저랬다 해서요
하지만 주둔군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판사님의 넥타이를 보니 찬성하시는 쪽 같지만 군대는 병사들에게 진실할 의무를 면책받지 못합니다
엘리엇 일병은 1년을 복무할 것이며 전투는 보지 않을 거란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전투를 목도하게 됐죠.

좋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전장에 보내졌습니다
한 번도 훈련받은 적 없는 보직을 배정받았죠 최소한의 장비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복무 기간이 끝났는데 군에서 보내주질 않았죠
군에 자원하면서 그런 위험까지 예상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한이 연장되고 보급이 부족하고 훈련받지 못하고...

그러려고 자원한 게 아니죠
그러다 그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누나 말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군인들을 예우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들이 죽어갈 때 관심을 두는 것도 예우의 방법이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이 국민, 이 언론은 아무것도 틀린 게 없다는 듯이 다 함께 전진하고 있죠

테리 샤이보(안락사 논쟁을 일으킨 뇌사 환자) 열기에 휩싸여 한 달이나 보냈으면서 스러져 간 병사들의 시신은 보여주길 꺼리죠
아루바(텍사스의 휴양지)에서 소녀가 실종이라도 되면 시청률이 가장 높은 케이블 뉴스 방송국에서 한 시간은 충분히 할애할 겁니다

하지만 엘리엇 일병과 같은 청년이 작전 중에 사망한 일에는 관심을 두면 안 된다고 신께서 직접 금지하셨나 보군요

이라크에서 2천 명이 넘는 미국의 꿈나무들이 쓰러졌지만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모르죠

어쩌면 청년들이 죽고 있다는 걸 모른 체하고 싶은 건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이 전쟁은 거의 방송에 나가지 않았죠
병사들이 바그다드 거리에서 폭격을 당해 전우의 품에 안겨 죽어가는 영상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수천 명인데도요 그런데도 미국민이 정말 관심을 두는 문제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실제로 사귀느냐는 거죠

최소한 베트남 전쟁 때는 모두 현실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엘리엇 일병이 죽은 것은 국민과 정부가 현실을 부정했던 탓도 일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전쟁을 위한 어떤 전략도 없습니다 철수할 계획조차 잡혀 있지 않죠


병사들 중 일부는 복무 기간이 20년 이상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병사들의 부모들은 방탄복을 사서 보내줘야 하죠
군대에서 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다가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부인하는 나라로서 우린 그걸 방치하고 있죠
단순히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엘리엇 씨는 신경을 썼죠
한 전몰 병사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이 법정에 섰습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전 이 전쟁이 좋은지 나쁜지 아는 척할 생각 전혀 없어요, 
하지만 복잡한 문제라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겠죠
일반 시민으로서든 애국자로서든 이 문제에 대해 더 토론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