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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서머힐은 문제아를 어떻게 다루는가?

by 랭님 2009. 3. 23.

출처 : http://explain.egloos.com/4014825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던 김인규 교수의 글을 놓고 조금 긴 말을 늘어놓았다. 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교실붕괴'를 막으려면 '체벌허용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김인규 교수의 생각에 나는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다. 그 까닭은 이렇다. 첫째, '교실붕괴'의 원인이 진짜 '체벌금지' 때문인가? 둘째, 체벌을 허용하면 학습권이 보호되는가? 셋째, 학습권을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 교육방법이 체벌밖에 없는가? 넷째, 체벌을 다시 도입한다는 영국과 미국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교육)선진국'으로 볼 수 있는가? 다섯째, 김인규 교수가 체벌 허용의 근거로 인용한 스티븐 레빗 교수의 '실증연구'가 미성년 범죄를 대상으로 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교실에서 체벌의 대상이 되는 문제아를 우리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봐야하는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일간지에 쓰는 글이니 표현은 점잖았지만 아마도 김인규 교수의 진짜 속내는 이러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전교조 놈들. 무슨 얼어 죽을 사랑 타령이야. 그냥 말 안 듣는 놈은 때리는 게 약이라니까. 교사의 권위도 세우고 효과도 바로 나타나니 얼마나 좋아.' 그러나 진짜 그럴까? 오늘날 대안학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서머힐을 세운 A. S. 닐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세상의 모든 청소년 범죄자들은 행복을 찾아 헤맨다. 그들이 반사회적인 존재가 되는 근본 원인은 학교나 집에서 불행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린 시절에 누렸어야 했을 행복은 이제 물건에 손상을 입히고, 훔치고, 사람들을 때리는 행위를 통해서 얻는 거짓 행복에 자리를 물려주었다. 기쁨이었어야 할 것이 욕구불만 때문에 증오가 되어버렸다. 청소년들의 비행을 치유하는 방법이 어린 시절에 행복을 주는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청소년 범죄를 줄이려고 애쓰는 선한 사람들은 모두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주의를 집중해야 할 때다. 처벌과 두려움과 사랑의 부족으로 뒤틀린 어린 시절 말이다. 이것은 그저 이론만이 아니다. 초창기에 서머힐에는 많은 문제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의 대부분 올곧은 사람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그들이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유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증오와 처벌로는 어떤 것도 치유할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다. 호머 레인은 50년 전에 이를 입증했다. 서머힐은 '문제아'를 위한 학교가 아니었지만, 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일반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받아들였다. 35년 전 서머힐에는 도둑들, 거짓말쟁이들, 망나니들이 상당수 있었다. 적어도 3년 이상 서머힐에 다닌 학생들 중에서 나중에 감옥에 간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전쟁 중에 휘발유를 암거래하다가 붙잡혔다. 불행히도 그의 주유소는 내가 사는 데서 3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휘발유가 부족했는데.
당시 서머힐에는 문제아들이 꽤 많았다.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다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정신분석으로 문제아들을 치유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분석을 받지 않은 아이들 역시 치유되었다. 그래서 문제아들을 치유한 것은 심리학이 아니라 바로 자유, 아이들로 하여금 본래의 자기를 찾게 만든 자유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사람이 범죄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빈민층 출신의 범죄자 수나 중산층 출신의 범죄자 수가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은 에고를 표출할 기회를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돈으로 물건을 사는 즐거움, 세련된 주변 환경, 문화, 출신 성분에 대한 긍지 등등이 모두 에고를 충족시킨다. 가난 속에서는 에고가 굶주린다.
(중략)
나는 소년원이나 청소년 교화학교를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시설들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할 수가 없다. 일부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읽어서 아는 바로는 거기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은 피수용자들을 악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상명하달식 규율, 힘든 작업, 무조건적인 복종, 자유 시간의 부족 등등. 처벌은 개인적인 병이든 사회적인 병이든 어떤 것도 치유할 수 없다.
(중략)
호머 레인의 리틀코먼웰스에 있던 비행 청소년들은 모두 도시 빈민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들 중에 다시 범죄 사회로 돌아간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와 같은 레인의 방식을 나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혼내주는 방식은 증오의 방식이라고 부른다. 증오로는 어떤 사람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증오의 방식은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단언한다.
- 한승오 옮김,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

김인규 교수는 닐을 '이상주의자'로 취급하겠지만, 저건 이상이 아니다. 닐은 체벌이 아닌 사랑으로서 진짜 문제아를 올곧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건 현실이다. 사랑이라는 교육방법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멀리 내다보는 여유를 김인규 교수는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