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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마케팅/경영전략

영화와「변화(CHANGE)」이야기

by 랭님 2009. 6. 28.

▣영화와「변화(CHANGE)」이야기▣  

 

 

 

 

영화와「변화(CHANGE)」이야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가 있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트레버는 사회 시간에 새로 담임을 맡은 유진 시모넷 선생과 첫 대면을 한다.

 

시모넷 선생은 학생들에게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것을 행동에 옮겨보라" 는 색다른 과제를 내주었다.

 

트래버는 이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즉, 자신이 먼저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 세 사람이 다시 각각 세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 나가다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선행의 피라미드를 쌓아 변화를 일으켜보겠다는 것이었다. 트레버는 이것을 실행에 옮겼다.

 

첫번째 대상은 트레버가 살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교외의 노숙자 중 한 사람이었다. 트레버는 술과 마약에 찌든 노숙자를 집으로 데려와 먹을 것을 주고 차고에서 잘 수 있게 했으며 샤워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노숙자는 고마운 마음에 트레버의 집 차고에 버려지다시피 내던져 있던 자동차를 밤새 수리해 다시 시동이 걸리도록 고쳐 놓았다. 또 트레버에게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노숙자가 변한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기보다 그 변화를 지속시키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노숙자는 결국 다시 마약에 빠져들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변화는 촉발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변화는 지속되어야 하고 또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는 자칫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결국 변화의 진정한 힘은 촉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과 관리에 있다.

 

두 번째 대상은 시모넷 선생과 엄마였다.

시모넷 선생은 어릴 적 입은 화상 때문에 얼굴에 큰 흉터가 있엇다.

그래서 누군가를 선뜻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의 벽이 있었다.

트레버는 자신의 엄마(헬렌 헌트)가 시모넷 선생과 만나도록 일을 꾸민다.

 

술만 먹으면 자신을 때리던 남편과 별거하고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던 엄마는 낮에는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장에서 환전 일을 하고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서빙을 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트레버의 엄마는 남편의 충동적인 매질과 삶이 주는 무게에 못이겨 알코올 중독에 걸린 여자였다. 그러나 시모넷 선생은 트레버의 엄마를 만나 호감을 갖게 되고 곧 사랑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트레버의 바람과는 달리 시모넷 선생과 엄마의 관계는 집 나갔던 트레버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면서 어긋나고 만다.

 

변화를 가로막는 것 중 가장 흔한 것은 ‘익숙한 것으로의 회귀’다.트레버의 엄마는 트레버의 아버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익숙한 것으로의 회귀 이상은 아니었다.트레버의 엄마는 낯선 것 대신 익숙한 것을 택했고 결국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사실 그들의 변화를 가로막은 것은 트레버 아버지의 출현이라는 예기치 않았던 상황의 발생이 아니라 자기 안의 익숙함에 대한 미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변화는 익숙함을 떨쳐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세 번째 대상은 트레버의 키 작고 약한 급우였다.

그 친구는 반에서 일종의 ‘왕따’였고 늘상 덩치 큰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트레버는 그 급우를 돕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급우가 매 맞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키 작고 약한 급우가 맞는 것을 막으려면 트레버 자신이 뭇매를 맞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트레버는 나서길 주저했다. 그 상황에서 나섰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변화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반드시 대가를 수반한다. 변화의 기차는 무임승차할 수 없다. 변화의 시장에서는 공짜 점심도 없다. 변화는 대가를 요구한다. 따라서 우리가 변화하려면 기꺼이 대가를 치를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영화 속의 주인공 트레버는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세 사람에게 선행을 행하거나 행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현상뿐이었다.

 

노숙자는 여전히 마약에 찌들어 있었고, 시모넷 선생과 엄마의 관계는 평행선이었으며 키 작은 급우는 여전히 당하고만 살았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정작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그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때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화라는 씨앗이 뿌려진 이후 그것에서 싹이 틀 때까지는 잠복하면서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이 고요하게 침묵하는 상황을 참고 기다리며 견디어내야만 하는 시간이다.

결국 변화는 숙성의 시간을 견디어낸 후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인 것이다.

 

트레버의 첫번째 선행의 대상자였던 노숙자는 다리에서 투신자살하려는 한 여자를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변화했음을 입증했고 트레버의 작은 선행에 대해 또 하나의 선행으로 답했다.

 

시모넷 선생과 트레버의 엄마 역시 익숙한 관계의 유혹을 떨치고 다시 학교에서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한다.

서로에게 낯설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변화에의 요구를 끌어안은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트레버 자신도 늘 당하고만 지내던 키 작은 친구를 돕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며 싸우길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영화에서 트레버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 극적이고 또 너무 비싸게 표현되었다. 친구를 돕기 위해 싸우던 트레버가 다른 아이가 휘두른 칼에 찔려 결국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변화의 불씨를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만든다.

트레버는 변화의 부싯돌이었다.

그는 변화의 불씨를 죽이지 않고 살려내 퍼뜨렸다.

그는 변화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함을 확인시켰다.

그는 변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사 그것이 목숨 거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트레버는 진정한 ‘변화의 주인’이었다. 우리는 변화하길 원하고 또 변화시키길 원한다. 그러나 그 변화에의 욕망을 드러내기에 앞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 앞에 스스로 서보아야 한다.

 

- 당신은 변화를 일으킬 마음의 부싯돌을 갖고 있는가.

- 당신은 그 변화를 지속하고 관리한 열정이 있는가.

- 당신은 그 변화를 가로막는 자기 안의 익숙함들을 떨쳐낼 용기가 있는가.

- 당신은 기꺼이 변화에 수반되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 그리고 당신은 그 변화의 씨앗이 발아해 열매 맺을 때까지 무거운 침묵을 견디며 참고 기다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변할 수 있다.

당신은 변화와의 계약서에 ‘을()’이 아니라 ‘갑()’으로 적을 수 있다.

진정한 ‘변화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결론 : 변화의 4가지 속성】

 

1. 변화는 촉발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속되고 관리 되어야 한다.

2. 변화는 익숙함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3. 변화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변화의 버스에는 무임승차할 수 없고 변화의 시장에서는 공짜 점심이 없다.

4. 변화는 오랜 숙성의 시간을 견디어 낸 후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리더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