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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논평> 복지예산 축소는 서민의 삶 포기하겠다는 선언

by 랭님 2008. 9. 19.

연합뉴스 보도자료 | 기사입력 2008.04.30 18:18

견실한 복지제도 없는 경제성장은 '강부자'들만의 세상 만들어
국민 없는 '예산안 편성지침',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경제성장을 내세운 복지 후퇴가 본격화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선거기간이나 취임사, 국정과제 등에서는 '생애희망 디딤돌 7대 프로젝트', '성장과 사회통합을 함께 가져가는 신사회정책', '능동적 복지' 등 현란한 수사로 복지를 경시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성장에 올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어제(4/29), 복지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2009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했다. 재정수입에 있어서는 감세, 재원배분에 있어서는 복지지출 효율화를 내세운 복지예산 축소 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해 "복지재정규모는 적정수준으로 관리하면서 복지지출 효율화를 통해 수혜자의 복지혜택은 줄이지 않도록 개선한다"고 밝혔으나, 실질적으로는 국가복지의 대상을 저소득층에 한정하고,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예상되는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예산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해 대부분의 복지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김종해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이 같은 예산편성지침은 국민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판단하며, 서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예산안 편성지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는 지침을 통해 '재정은 저소득층 위주로 지원, 민간의 복지자원 적극 활용, 상위소득 계층에 대한 재정지원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저소득층에 한해서만 복지지출을 확충하고, 그 외 다수의 서민들에 대해서는 국가복지가 아닌 시장을 통해 '각자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선별주의의 강화는 스티그마를 강화시키고,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한 서민들마저도 안정적인 삶이 위협받고 있는 현 시점에 이 같은 복지지출 축소지침을 내놓은 것은 오로지 '부자'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한 정부가 되겠다는 커밍아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최근 5년 간 보건복지분야 지출 증가율이 연평균 11.3%로 '빠른 속도의 복지지출 확대로 인한 비효율성이 발생했다'며, '복지재정을 적정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증가율은 그간 국민들의 복지요구에 비해 지나치게 적었던 복지지출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GDP 대비 7.8%(2008년 예산기준)로, 2003년 OECD 국가 평균 수준인 20.93%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또한 주요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을 달성한 시점이 1980년 전후인데, 당시 OECD 23개국의 복지재정 규모는 이미 GDP 대비 평균 17.9%였다. 따라서 정부의 말대로 복지예산을 '적정수준으로 관리' 하려면 당장 20% 가까이 복지재정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기초적인 인식도 없이 무조건 복지예산은 낭비이며, 성장으로 복지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세포적인 접근으로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희망마저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선진국에 견줘 크게 부족한 점, 기초생활보장제도, 연금 등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등 사회보장체계를 갖추었지만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보장수준 역시 매우 낮다는 점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이 같은 상황에 경제성장만을 내세운 복지지출 축소는 그간 이루어 놓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마저 후퇴시키는 것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한편 정부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생계급여, 의료급여의 대상자와 지원수준을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현재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빈곤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미만인 차상위계층)이 600여 만 명에 이르고, 최저생계비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빈곤탈피가 아니라 빈곤유지를 위한 사회안전망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대상자와 지원수준을 동결하겠다는 것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보장마저 나 몰라라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사업대상 확대와 지원단가 인상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지, 정부가 예산지침을 통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사업대상 확대와 지원단가 인상이 불가피한 경우 지출한도 내에서 다른 사업의 지출을 감축하는 등으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의 복지수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끼워 맞추기 식'으로 정부 예산을 운영하겠다니, 한 국가를 운용하는 '정부'가 맞긴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부는 보육지원을 시장위주의 바우처로 대체하고, 공공보육시설 확충은 필요성, 집행실적 등을 근거로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시설 중심으로 짜여진 보육 인프라의 현실과 지자체 예산 부족 등으로 집행실적이 낮은 공공보육시설 예산은 대폭 축소될 것이 뻔한 상황이다. 공공보육시설을 늘리지 않고, 보육바우처로 수요자들에게 직접 재정지원을 할 경우 보육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보육료 부담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공공보육시설 예산 감축은 국공립보육시설에서 저렴하고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수 백 만 학부모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는 것이며, 국공립보육시설을 아동 수의 30%까지 확대하기로 했던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을 파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모아진 '국민의 돈' 이다. 정부 예산지출 원칙의 최우선은 국민들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취약계층과 성장에서 파생되는 각종 사회적 위험을 해소시켜 줄 튼튼한 사회복지제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선진국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복지지출을 늘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금을 줄이고, 복지혜택을 줄여서 얻어지는 삶은 서민들에게는 희망이 아닌 재앙일 뿐이다.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