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에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왕과 왕비의 도움을 받아 후추를 찾으러 인도로 떠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럽 사람들은 식사 때 고기를 자주 먹는데 그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힘들었다. 유럽 사람들은 날마다 어떡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고기 요리를 할 때 후추를 넣으면 오래된 고기에는 나는 비릿한 냄새를 없애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럽에서는 후추가 엄청 비쌌다.
콜럼버스는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인도에서 후추를 잔뜩 싣고 돌아올 꿈에 부풀었다. 하지반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대서양을 건너가면 더 빨리 인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카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는 걸 몰랐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를 인도라고 믿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도착하자마자 후추, 금, 은 따위를 찾다가 금광을 발견했다. 그는 금을 캐내기 위해 원주민들을 금광으로 끌고 가 억지로 일을 시켰다. 그러나 생각한 만큼의 금을 얻을 수 없었다. 콜럼버스는 점점 속이 타기 시작했다. 후추는 커녕 금도 많이 찾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유럽에서 싣고 온 사탕수수를 아메리카에 심기 시작했다.
다 자란 사탕수수의 줄기를 으깨거나 녹이면 달콤한 즙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즙을 이용해 설탕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당시 유럽 사람들은 설탕을 '만병통치약' 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설탕 가격은 금은에 버금 갈 정도였다. 콜럼버스는 사탕수수를 키워 설탕을 만든 뒤 유럽으로 가져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설탕을 얻어 간 뒤부터, 아메리카에 사탕수수 농장이 하나 둘 늘어났다. 사탕수수 농장은 1660년대를 지나면서 설탕을 무척 좋아한 유럽 사람들 때문에 엄청 바빠졌다.
1660년대 초에 포르투칼의 공주 캐서린이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하면서 차 마시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캐서린 왕비가 차 마시는 걸 몹시 좋아해서 귀족들은 왕비를 만날 때마다 차를 마셔야 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차 마시는 문화가 널리 퍼져 나갔다. 차가 많이 팔리니까, 차에 타 먹는 설탕도 덩달아 인기기 높아졌다.
설탕이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사탕수수 밭을 일구느라 죽는 원주민들이 늘어만 갔다. 유럽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줄어들자, 새로운 일꾼을 찾아 아프리카로 갔다.
유럽사람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아메리카로 데려오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한테 장식용 구슬, 무기, 화약, 면으로 만든 옷감 따위를 팔면서 그 대가로물건이 아니 사람을 달라고 했다. 그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좀 더 넓고 좋은 땅을 갖기 위해 부족끼리 자주 싸움을 벌였는데 유럽사람들이 파는 무기가 있으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 추장들은 자기 부족을 위해 다른 부족을 유럽 사람들한테 팔아 넘겼던 것이다.
흑인들은 쇠사슬에 손발이 묶인 채 '검은 물건' 이라고 불리며 '하얀 물건' 인 설탕을 만들기 위해 아메리카로 끌려왔다